위조 전자부품

뚝닥뚝닥 2014. 10. 25. 04:17

어디 애만 태웠겠나, 소비된 시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실추된 신용은 또 어떻구. 

매우 간단하여 트러블이 있을 수 없는 회로가 몇개월간 애를 먹였다. 모든게 정상적으로 보이는데 동작은 정상과 다른 결과를 낳았다. 눈을 비비고 거듭, 이 잡듯 살펴보아도 도무지 이치가 통하지 않는 이 이상한 현상은 해석 할 수가 없었다.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원인이 미궁에 빠지자 나는 심지어 내 오래된 사고 성향이 혹여 원인 찾기에 방해가 되었나하여 수도승인냥 내 성향까지 살펴야 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대개 이상증세가 나타날때에는 우선 설계에 원인을 둔다. 하지만 한 두 번 하는 일도 아니고 이 수십년간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콘덴서 4개와 칩한개로 구성되는) 간단한 회로에 무슨 오류가 있을 수 있겠나. 그래서 난 이 소동의 초기에 한편 부품 불량을 의심 했었다. 그러나 부품 불량은 짐작만으로는 결론을 내릴수 없는 일이다. 확정적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단정 할 수 없지 않은가.  부품불량이 원인이었다는 내 판단에 오류가 있다면 그로 인해 타인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므로.  턴키로 납품한 임가공 업자에게 억울한 누명(?)이라도 씌워진다면...  발언 마저 조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제품의 이상 발현 시기는 제각각이었다.  몇몇의 것은 생산단계에서 이상증세를 보였고, 어떤것은 생산단계에서 문제가 없다가 필드에 나가자마자 동작 하지 않았다.  대부분 간헐적 동작으로써 정상과 이상을 마치 왕래듯 나타났다. 출하후 현장 설치가 되고 며칠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원인이 미궁이니 뾰죽한 수가 있겠는가. 그럴때마다 난 기판에서 칩을 뜯어내고 부품을 새것으로 교환하는 방법으로 제품을 정상화 시키곤 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은 부품 교체외에는 없었으므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수십대의 제품이 출하되었고 간헐적인 이상증세는 지속되고 있었다. 문제는 다음으로 요약 되었다.

① 설계불량 
② 아트워크불량 및 부품 오삽 
③ 기판과 연결된 외부 배선의 불량 
④ SMT공정중 리플러어 과열 
⑤ 부품의 로트불량 
⑥ 위조부품

원인은 불량부품 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나 부품불량은 아주 드믄 일이므로 의심되었던 것은 reflow공정에서의 과열이 아닐까도 생각했었다. 살펴본 결과 과열도 그 가능성이 낮기로는 마찬가지였다.

 3개월 후, 출하 수량이 늘어가면서 불량 세트도 같이 늘어났다. 그리고 눈여겨 볼만한 통계를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특정 부품이 교체된 세트의 경우 모두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인은 불량부품, 조립중 부품의 훼손, 가지로 집중되었다. 공정에서 부품이 훼손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같은 로트의 해당 부품을 입수하여 시험 해보는것이다.  그러나 애초 사용되어진 부품과 동일한 로트의 부품을 입수하는건 불가능했다.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당 모델의 부품을 시장에서 구매하여 살펴보는 것에 그쳤다.  부품이 불량하다는 증명도 부품메이커의 판단이 필요하므로 그 확인은 엄감생신 일 뿐 이다. 아뭏튼 제품위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부품은 불량부품이거나 훼손된 부품이라는 점은 명확해 보였다.  모든 가능성을 검토해보고 그리고 신용에 꽤 손상을 잎은 시점,  더 판단시점을 더 미룰 수 없었던 나는 부품이 애초부터 불량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의 부품은 TI의 MAX3232다. 차지펌프가 들어가 있고, 레벨컨버터가 들어있는 RS-232 드라이버/리시버 칩이다. 간단한 동작을 하는 칩이다. TI의 마킹 Convention rule만으로는 이 부품이 가짜인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사용된 부품표면의 마킹은 조잡했다. 로고는 선명하지 않았고 배면에 원산지가 China라고 음각되어 있다.  외관이 그렇게 형편 없는 것만은 아니어서 처음부터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하더라도 외관만으로 불량한 부품이라 단정 할 수는 없는 그런 상태였다.


가짜 MAX3232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임가공 업체에게 알렸다. 그리고 그가 납품 후 재고로 가지고 있었던 동일 부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Reel이 통째로 남아 있었다.  확인차 Reel의 표면에 붙어 있는 TI의 스티커를 보니 한 눈에 보아도 조잡했다. 가짜였다. 업체의 말에 따르면 해당 부품은 TI의 대리점 제품이 아니었다. 해외 재고였고, 상위 업자로 부터 입수했으며, 이전 유통 과정의 추적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사실 같은 세트에 사용되어진 불량 부품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TI의 DS90C363 역시 원인 미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 칩은 LVDS former이다. 출하 후 초기단계불량이 매우 적고, 사용중에 작은 빈도로 역시 산발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회로는 무결하였다.  이 칩을 TI에서 Air로 받은 정품과 비교해보니 명확히 가짜임을 알 수 있었다. 제조 공장과 시설넘버, 패키지 다이 금형이 같은데도 정품과 마킹이 달랐다. 확연히 구별될 정도였고 패키지 모양도 달랐다. 이 칩은 제법 가격이 나간다.


가짜 DS90C363

TSSOP 48핀이다. 뜯어낼 수 밖에 없었다.


임가공업체는 그간의 정황과 결과에 동의하고 새부품으로 교환해주겠다고 했다. 사실 부품가격이 문제이겠나. 출하된 세트를 모두 회수하거나 재고분량을 모은뒤  부품을 교체해야 하는데 그 일련의 과정이 간단하겠는가. 업체는 수리비용도 청구하면 보상해 주겠다고는 하지만 고의도 아닌일에다가 이런 저런 이유로 냉정한 청구서를 들이미는게 어디 쉬운일 수 있겠는가. 부품교환외에 난 어떠한 청구도 하지 못했다. 


뜯어낸 Max3232. 수작업으로 뜯어내다가 질려서 결국 리웍업체에 맏기게 되었다.


신뢰할 만한 부품공급업자에게 말을 들어보니 TI(Texas Instruments)의 부품은 가격이 높은편이어서 시장에 가짜가 상당량 유통된단다. 그에게 시중의 80%가 가짜라고 단호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믿겨지지 않는 수치다. 이말이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 구매할때 유통경로가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가짜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급적 TI것은 지양하고 호완되는 다른 메이커의 부품을 권장했다. TI 아닌 다른 메이커 부품의 경우 가짜를 만날 일이 적다는 이야기였다. 


정품 릴에서 연이어 뽑아낸 MAX3232이다. 하나씩 건너서 연번호로 이어져 있다. 릴에 들어있는 모든 부품의 번호가 다르다. 위조방지 스템프인 셈이다. 오죽하면...


다른 회사의 제품이 리마킹 되거나 아예 호환품으로 제조된 가짜칩들은  TI브랜드의 가치만큼 비싸게 팔릴테니 이 가짜 제조자들은 그들만의 시장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다. 기왕 만들거면 가짜라도 동작이나 문제없다면 알아채기란 쉽지 않을 터인데 가짜칩은 아예 동작마저 시원치 않다. 

이러한 가짜부품이 인명과 연관된 자동차나 항공기, 군사 무기, 또는 핵발전소와 같은 실로 고도로 신뢰가 요구되는 장치나 플랜트에 사용되어 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구글링을 해보니 미국 국방성도 위조부품의 무기 탑재 가능성에 대해 수량(Quantity)을 언급하는 것으로써 위조부품의 무기탑재를 기정 사실화 하였다. 자동차나 무기에 가짜 전자부품이 섞여 조립되어 있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절대 신뢰 영역에 금이 간 상태이니. 

TI korea에 문의 해보니 가짜 부품은 금시초문이란다.  답변을 그대로 믿지도 않겠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마저 의외였다.  정식 유통경로를 통해서 구입하지 않은 것은 당연히 그들로써 당연한 반응이지만 이렇듯 정식이 아닌 외곽으로 형성된 시장은 기묘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짜부품으로 인한 리스크는 감당 할 수 없이 막대하게 커질수 있다.  누군가의 행복을 침해하는건 분명하며 공들여 쌓아올린 회사의 문을 닫게 할지도 모른다.

부품을 투명한 병에 넣어 책상 위에 보란듯 올려두었다.  생각 해보니 왜 처음부터 임가공 업자에게 부품구입 경로를 확인 해 달라고 요청 하지 않았는지, 허송세월 3개월... 아뭏튼 안타까운 일이었다.   양산 부품 구입은 설계만큼 신중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적정수준의 반도체 파일로트 생산설비가 보편화 되면서 누군가가 마음만 먹으면 위조부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제 전자부품도 손쉽게 위조하게 되면서, 마치 소프트웨어 바이러스 마냥 흔하게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자부품 입수는 정식대리점등 정상적인 유통경로를 이용하여야 한다. 어디서였든 구입 순간 정품유무를 확신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소동의 결론이요 교훈이다.  많은 전자회로를 만들어왔으나 이번 소동이 첫 눈탱이인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아무일 없이 지나 갔었던 것인지 돌이켜 보니 미스테리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ps:

위조 전자부품의 생산지는 중국이나 동남아 지역이라고 한다. 중국 알리바바를 통한 부품구매는 피하는게 좋다. 미국의 경우 위조전자부품의 제조 유통은 30년형의 중죄에 해당한다. '위조 전자부품' 이란 키워드로 구글 검색을 하면 적지 않은 정보를 찾아 볼 수 있다.



Posted by Ca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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